신용카드가 탄생한 역사적 순간, '최초의 만찬'
2018.05.25   |   조회 : 3408

물물교환의 시대로부터 물품화폐가 발달하고, 지폐가 생겨났다. 그리고 이제는 물건을 사고 ‘플라스틱 카드’를 내미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됐다. 너무나 익숙한 결제수단이 된 신용카드. 8.6cm x 5.4cm의 조그만 카드로 비용을 지불할 수 있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Credit card’는 인간의 상상력에서 시작됐다. 용어가 처음 사용된 것은 에드워드 벨라미(Edward Bellamy)가 1888년 발표한 공상과학소설 <Looking Backward: 2000-1887>에서였다. 소설 속 주인공 줄리안 웨스트는 1887년에 잠들었다가 2000년에 깨어난다. 모든 것이 변화한 낯선 세상에서, 그는 아주 신기한 ‘돈’을 마주하게 된다.


2000년의 사람들은 모든 소비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지급 결제수단, ‘신용카드’를 가지고 살아간다. 이렇게 SF소설에 등장하던 ‘공상’의 산물이 실제로 세상에 등장한 것은 언제일까? 에드워드 벨라미의 예측보다는 좀 더 빠른, 1949년의 이야기다.






뉴욕의 어느 레스토랑. 미국의 한 사업가가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을 대접했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결제를 하려던 그는 호텔 룸에 지갑을 두고 온 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아내에게 연락해 지갑을 가지고 와 달라고 부탁했고, 겨우 망신을 면할 수 있었다. ‘이번 한 번은 잘 넘겼지만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만약 비즈니스 미팅이라면? 지갑을 가져다 줄 사람도 없다면?’ 오늘보다 더 곤란한 상황들이 그의 머릿속에 펼쳐졌다. 사업가 ‘프랭크 맥나마라(Frank McNamara)’의 레이더가 작동했다.







프랭크 맥나마라는 친구들에게 이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자신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아닌가! 이게 누구나 한 번쯤 겪는 불편이라면, 해결책은 좋은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었다. ‘돈 없이도 결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는 생각했다. 미리 레스토랑과 협약을 맺고, 자신의 ‘신용’을 보이는 것으로 결제를 대신한다면? 맥나마라는 신분을 보증하기 위해 제시할 판지(Cardboard) 재질의 카드를 떠올렸다.





(출처: William Bird - flickr.com)

현대식 신용카드의 역사는 바로 여기서 시작됐다. 맥나마라는 변호사인 친구 랄프 슈나이더(Ralph Schneider)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현찰을 대체할 수 있는 카드’ 사업을 구상했다. 1년 후인 1950년, 그는 자신이 곤혹스러운 일을 겪을 뻔한 뉴욕의 레스토랑 메이저스 캐빈 그릴(Major’s Cabin Grill)을 다시 방문했다. 맥나마라와 슈나이더는 사업에 대해 설명하며 레스토랑 전용 카드를 제안한다. 그리고 메이저스 캐빈 그릴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카드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오늘날과 비슷한 신용카드가 첫 등장하게 되는 이 역사적 페이지(!)에는 여러 버전이 있다. 즉 정확한 사실 확인이 어려운, 전해지는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이고, 어쨌든 ‘밥을 먹고 Credit card를 내민다’는 소설 같은 일은 이제 현실이 된다.





(출처: dinersclub.com)

최초의 신용카드에 두 사람은 ‘다이너스 클럽 카드(Diners Club Card)’라는 이름을 붙였다. ‘식사를 하다(dine)’와 동료 또는 멤버십의 의미를 담고 있는 ‘클럽(club)’을 조합한 것이다. 맥나마라가 신용카드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 계기를 생각하면 매우 직관적이고 적절한 이름. 이름 그대로 처음에 다이너스 카드는 레스토랑에서의 식비 지불용으로 사용됐다.

맥나마라와 슈나이더는 먼저 다이너스 클럽의 회원을 모으고 레스토랑과 가맹점 계약을 맺었다. 회원 200여명은 두 사람의 친척 및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으며, 5달러의 연회비를 받아 운영했다. 초기의 가맹점은 뉴욕 소재 레스토랑 14곳이었다. 두 사람은 이들에게 카드 한 장을 만들어 건넸는데, 계약된 레스토랑에서는 그 카드만 보여주면 당장 계산하지 않아도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결제는 월말에 한꺼번에 하도록 협의했다. 이렇게 작은 규모로 시작된 사업은 1년만에 회원 수가 2만명 이상으로 증가하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다이너스 클럽 카드의 편리함이 알려지면서 계속해서 회원이 증가하고 사업이 확장됐다. 1951년, 뉴욕뿐만 아니라 마이애미, 보스턴,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내의 주요 도시에 가맹점이 생겨나 카드 사용이 가능해졌다. 회원 수는 4만명을 넘어섰다. 1952년에는 400여개의 레스토랑을 비롯해 30여개의 호텔, 200여개의 렌터카 에이전시, 5개의 꽃집 등 다른 업종으로 가맹이 확대됐다. 마침내 1953년, 다이너스 클럽 카드는 미국을 넘어 해외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캐나다, 호주, 브라질, 쿠바 등, 그리고 유럽 상륙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서 인정받으며 신용카드의 ‘국제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다이너스 클럽은 멤버십을 강화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비싼 연회비를 지불할 수 있는 상류층을 주로 공략하면서, 그들에게 적합한 혜택인 고급 레스토랑 할인, 공항 라운지 서비스 등과 같은 특화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다. VVIP카드의 그.사.세 역시 아주 오랜 역사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다이너스 클럽 카드의 성공으로 신용카드 사업의 가능성을 확인한 은행 업계에서도 신용카드를 발급하게 되면서, 다이너스 클럽의 카드 독점은 끝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Bank of America)는 1958년 최초의 리볼빙(revolving)* 신용카드인 ‘뱅크아메리카드(BankAmericard)’를 출시, 1976년에 ‘비자(VISA)’로 이름을 바꾼다. 이에 맞서 미국 은행 연합인 인터뱅크 카드 협회(ICA)도 ‘마스터차지(Master Charge)’를 만들어 발급을 시작했으며, 1979년 ‘마스터카드(MasterCard)’로 명칭이 변경된다. 오늘날 모두가 아는 세계적인 카드 브랜드, 비자 마스터카드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은행계 카드인 만큼 기본적으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으며, 연회비를 낮추고 신용카드 본연의 기능에 집중함으로써 신용카드의 보급에 기여했다.

*리볼빙(revolving)? 카드 이용대금에 대해 매월 대금 결제 시 카드사와 회원이 미리 약정한 청구율 혹은 청구액만큼만 결제하는 제도. 미결제 잔액은 다음달로 이월되기 때문에 매월 대금을 다 갚지 않아도 이용한도 내에서 카드를 이용할 수 있다.





(출처: 신세계백화점 홈페이지)

대한민국에도 신용카드가 도입됐다. 한국 최초의 신용카드는 1969년 발급된 신세계백화점 카드. 신세계백화점은 자사 제품의 판매 증진을 위해 일부 임직원을 대상으로 고객 카드(customer card)를 발급했다. 소수의 사람만을 대상으로 소량 발급된 점, 카드 사용처가 신세계백화점으로 국한된 점 등은 현재 신용카드와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카드 소지자가 카드를 보여주고 물건을 구매한 후 나중에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한국 최초의 신용카드로 인정받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후 백화점, 호텔을 중심으로 카드 발급이 확대되다가 (1970년 조선호텔, 1974년 미도파백화점, 1979년 롯데백화점 등) 1978년 코리안 익스프레스(Korean Express), 한국신용카드(KOCA) 등의 카드회사가 설립됐다. 그러나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신용카드 서비스가 시작된 것은 같은 해 외환은행이 비자 인터내셔널과 제휴해 비자카드 발급 업무를 개시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민은행을 시작으로 국내 은행권에서도 신용카드 관련 업무를 개시했고, 범용성을 가진 실질적 은행계 카드 ‘국민카드’가 등장하면서 한국 신용카드 사업의 성장 발판이 마련됐다. 또한 LG카드(현 신한카드)와 같은 대기업 계열의 전문 카드사가 후발주자로 등장하면서 신용카드의 보급∙확산이 가속화된다. 이른바 ‘은행계 카드사’‘전업계 카드사’라는 양대 산맥이 1980년대에 구축된 것!






1957년, 랭카스터의 헤럴드 보츠필드 부부가 비행기표와 다이너스 클럽 카드만을 지닌 채 30일 간 세계일주를 함으로써 현찰을 대체하는 신용카드의 편리함을 증명했다. 그리고, 지금. 에드워드 벨라미가 상상하던 미래인 2000년도 이미 과거가 됐다. 거의 모든 가게가 카드기를 구비하고 있고, 버스와 지하철, 택시까지 단말기에 삑- 접촉하는 것만으로 교통 요금을 지불할 수 있는 세상. 줄리안 웨스트가 2018년에 눈을 떴다면 너무 놀라서 바로 다시 기절했을 수도 있다. 

2017년 기준 한국은행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선호하는 지급수단 1위는 신용카드이고, 평균 보유장수는 2.1장이다. 당신의 지갑에도 신용카드가 하나쯤 들어있지 않은가? 이제 신용카드는 실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 됐다. 1949년 한 사람의 소소한 해프닝에서 시작된 신용카드의 HISTORY는, 계속 쓰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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