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의 사회적 약자 시스템은? ‘점자 신용카드’의 현주소
2018.10.26   |   조회 : 325

지난 9월, 국회에서 국회위원 17인이 참여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발의됐다. 제14조 ‘신용카드·직불카드의 발급’조항에서 현행 제1항~제5항에 추가로 제6항 및 제7항을 신설하자는 내용이었다. 신용카드의 발급과 관련하여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만한 안건이 무엇이었을까?

신용카드는 편리하다. 요즘은 인터넷, 스마트폰 앱 등을 통해 간편하게 신청 및 발급할 수도 있다. 본 에디터도 ‘5분만에 발급!’, ‘빠른 발급!’을 강조한 카드 신청 페이지에서 간단하게 발급을 신청했다. 간편결제 서비스도 활성화됐다. 그러나 과연 ‘모두’에게 그럴까?

(출처: 제주점자도서관 홈페이지)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른 제14조 제6항]
⑥ 신용카드업자는 신용카드등을 발급하는 경우 「장애인복지법」 제2조 제2항에 따른 제1급부터 제3급까지의 장애등급에 해당하는 중증시각장애인이 신청하는 때에는 시각장애인용 점자 카드를 발급하여야 한다.


‘점자 카드’란, 카드번호, 유효기간, 보안코드(CVV/CVC), 카드명을 카드 앞면에 점자돌기로 인쇄한 신용카드다. 일반 신용카드로는 카드 정보를 확인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 신용카드는 필수적이지만, 현재 발급 가능한 카드 수는 많지 않다. 카드 번호 등의 정보를 바로 확인할 수 없고, 지갑에 있는 똑같은 크기의 각종 카드 중 어느 것이 어떤 신용카드인지 모르는 불편함. 빠른 속도로 편리해지고 있는 개인금융생활에서 시각장애인은 여전히 금융취약계층이다.


카드 정보는 중요한 개인정보이고, 도용의 가능성도 있어서 결제 및 이체 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렵다. 설령 가족 등의 도움을 받아 알게 되더라도 번호, 유효기간 등의 모든 정보를 외워서 사용해야 한다. 

혜택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소비패턴에 맞게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신용카드의 강점이고, 상품 정보를 제공받는 것은 소비자의 기본적 권리다. 시각장애인이 이 권리를 바로 누리기 위해서는 카드뿐만 아니라 모든 상품 안내장 역시 점자 혹은 음성 안내본으로 제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반 서비스가 없는 이런 환경에서 시각장애인이 여러 개의 카드를 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카드 신청도 문제다. 대부분의 카드사 및 은행 홈페이지에 점자 신용카드 발급 정보에 대한 안내가 없었다. 점자, 장애인 등을 키워드로 하여 검색했을 때 점자 카드 발급 가능 여부가 명시되어 있거나 안내 게시글이 존재하는 카드사는 KB국민카드, 롯데카드, 삼성카드, 신한카드, 우리카드 정도 뿐.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거나 카드를 신청을 하려면 고객센터에 전화해야 하는 것 같았다. 즉 시각장애인이 점자 신용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고객센터에 직접 전화해서 신청하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 

전화를 받은 CS팀 직원이 점자 카드에 대해 충분한 정보가 없는 경우도 꽤 많았다. 본 에디터가 점자 카드 발급 가능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려고 전화로 문의했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확인해보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였다… (점자 카드로 발급되는 상품이 뭔지, 어떻게 신청하는지 이 간단한 질문을 하는데 평균 통화 시간이 거의 5분 이상…)

(출처: 신한카드 홈페이지)

2012년, 신한카드가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신용·체크카드를 출시했다. KB국민카드는 2015년 점자 카드 발급 대상 상품을 대폭 확대해, 희망하는 경우 신용·체크 모두(하이패스카드, KB국민 비씨카드 등 일부 상품 제외) 점자 카드로 발급받을 수 있게 됐다.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른 제14조 제7항]
⑦ 제6항에 따른 점자표기 방식, 점자 카드 크기 등 그 밖에 시각장애인용 점자 카드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후 2017년 5월, 시각장애인의 문자 향유권 보장을 위한 「점자법」이 시행됨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전체 카드사 및 은행에 점자 카드 발급을 권고했다. 그러나 위의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 대부분의 카드사가 대표상품 2~3개에 대해서만 발급하고 있어 카드 선택에 제한이 있다. 게다가 점자 카드의 규격, 재질, 표기 방식 등에 제대로 된 기준 규정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

(출처: 서울특별시청 홈페이지 보도자료)

2018년 6월, 서울시는 28종의 ‘시각장애인 인식용 점자스티커’를 제작해 배부했다. 제작에 앞서 희망 문구, 형태 등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신용·체크카드'와 '멤버십카드'가 가장 희망하는 문구로 나타났다고 한다. 경제적 손실, 개인정보 보안 등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는 만큼 금융생활에서의 편의 향상이 얼마나 큰 이슈인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결과다. 그러나 이 스티커를 카드에 부착한다고 해도 결국 카드 정보가 필요할 때는 또 다시 벽에 부딪치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시각장애인은 약 25만 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10%(2017년 기준)를 차지한다. ‘실질적으로’ 이들의 신용카드 선택/발급/사용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현주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물론 점자 신용카드에 대한 높은 제작 비용, 적은 수요 등이 카드사 및 은행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고, 법과 제도의 정비는 그 기본이다. 

점자 카드와 관련된 제6항, 제7항의 신설을 제안한 여신전문금융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은 현재 국회 소관위원회에 접수된 상태다. 한국에 신용카드가 상용화되고 카드 산업이 안정적 성장을 이룩한 지 20여 년. ‘신용카드 사용률 1위, 지급결제수단 선호도 1위’ 국가에서 점자 신용카드에 대한 개정안이 2018년에 재차 발의된다는 것.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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